오두거사의 오두막

나나가 법정에 다시 선 날, 윤석열을 생각하다

최근 배우 겸 가수인 나나의 자택에 강도가 들었다. 다행히 나나와 그의 모친은 강도를 제압했고, 강도는 경찰에 검거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강도 사건 1심에서 피고인은 강도상해 혐의의 핵심 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 “절도에 불과했다”, “오히려 자신이 일방적으로 맞았다”는 취지로 진술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의 진술과 수사기관이 확보한 여러 정황증거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공소사실의 전제가 되는 폭행·협박, 흉기 사용, 상해 발생 경위를 거의 전부 다투고 있다.

형사재판의 구조에서 피고인의 가장 기초적인 방어전략은 부인이다. 사실관계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고, 행위의 법적 평가(강도냐 절도냐, 내란이냐 단순 직권 남용이냐)를 다툴 수도 있다. 문제는 부인의 정도와 방식, 그리고 그것이 재판 절차에 미치는 영향이다.

나나 사건의 피고인은 수사 단계에서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침입 목적(강도 vs 절도), 흉기 소지·사용 여부, 폭행·상해의 주체와 경위를 전부 쟁점화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나나 자택에 흉기를 들고 침입해 나나 모녀를 목 조르는 등 위협하고, 돈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상해를 입혔으나 제압돼 미수에 그쳤다”고 공소 사실을 설명했는데, 피고인은 이를 대부분 부인하였다. 그는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구타당했다”고 반박했고, “목 조른 사실도 없다”며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나나 어머니를 진정시키려 어깨를 붙들어 잡았는데, 팔을 풀자, 방에서 나온 나나가 달려들어 흉기를 휘둘렀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흉기는 나나 집에 있던 거라며 흉기에 있는 지문 감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렇게 피고인이 황당한 주장을 계속하니까, 참다못한 재판부가 “입장 바꿔, 누군가 집에 들어와 그런 짓을 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야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서면 증거만으로는 충분한 심리가 어렵게 되었고, 피해자의 직접 진술과 반대신문을 중심으로 한 ‘실질 심리’가 불가피해졌다. 피해자가 반복적으로 법정에 나와야 하는 구조 자체가 피로와 공포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이는 피해자 보호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형사 재판에서는 이렇게 지저분한 방어 전략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먼저, 수사 단계에서는 진술을 회피하거나 거짓말로 일관한다. 재판 단계에서는 공소사실을 최대한 많이 부인해 증거조사를 복잡하게 만든다. 그리고, 압수수색·소환 조사에는 가능한 한 저항하거나 회피한다. 다음으로, 그 모든 행동을 “경찰·검찰이 나를 모함한다”는 피해자 프레임과 결합시킨다.

나나 사건의 피고인에게서 보이는 패턴은 상당 부분 이 유형에 속하는 것 같다. 진술과 객관적 정황 사이의 괴리가 크더라도, 끝까지 “나는 강도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피해자다”라는 서사를 밀어붙이는 거다. 재판부와 배심원(또는 여론) 사이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심어보려는 전략이다. 이는 실효성 여부를 떠나 오히려 더 처벌이 강해질 수도 있지만, 하급 범죄 사건에서 자주 목격되는 방어 양식이라고 알고 있다. 이걸 ‘잡범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주로 잡범들이 명백한 결과를 두고 막가파식으로 전면 부정하는 거다.

나는 법정에 불려나온 나나를 보면서 뜬금없이 윤석열이 생각났다.

윤석열의 전략 역시 “전면 부인”을 기본값으로 한다는 점에서 구조가 비슷하다. 내란·비상계엄 사건에서도 “정당한 국가안보 조치”를 내세우며 범죄 성립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나가 자기를 공격했다는 것처럼, 자기가 금방 해제하려고 ‘경고성 계엄’을 했다, 이건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다라는 식으로 좀 황당한 이야기를 정말 당연하게 늘어놓는다. 여기에 소환 불응, 강제구인에 대한 저항, 수사기관의 증거 확보 시도에 대한 광범위한 거부(휴대전화 교체, 메신저 탈퇴 등)가 결합되면서, 재판은 필연적으로 장기화·소모전 양상을 띠게 된다.

두 경우 모두, 피고인의 일관된 부인은 재판부로 하여금 “증거조사의 전 과정을 실제로 다 해보지 않고는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만든다. 증인신문은 늘어나고, 피해자·참고인의 법정 출석은 반복되며, 사건은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런 의미에서, 방어 방식의 ‘형식’은 분명히 닮아 있다.

그런데 다른 점도 있는 것 같다.

윤석열이 선택한 전략은, 이 ‘잡범 전략’을 기본 틀로 가져오되, 그것을 정치투쟁과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확장했다. 법정 안에서는 전면 부인, 절차적 저항, 증거인멸 같은 익숙한 패턴이 반복된다. 하지만 법정 밖에서는 이를 ‘정치 보복에 맞서는 투쟁’, ‘헌법·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한 저항’으로 상징화한다. 그 결과, 정치적 관점에서는 그의 지지층에게 이 전략이 일종의 위대한 순교의 서사로 포장된다.

오히려 범죄의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둘의 방어 방식이 겨냥하는 대상(피해자·사회·역사)에 미치는 파급력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나나 사건은 사인 간의 폭력·재산범죄이다. 물론, 나나 집에 침입한 강도에 대한 형사적 비난 정도가 작다고 볼 수는 없다. 나나 사건에서 피고인의 전면 부인은 피해자인 나나와 그 가족에게 직접적인 2차 피해를 초래한다. 반복되는 출석, 가해자와의 대면, 사건 당시 공포를 재현하는 증언 과정은 심리적 부담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개별 피해자의 보호와 형사법적 정의 실현이라는 틀 안에서 논의된다.

반면 윤석열 사건에서 쟁점이 되는 내란·비상계엄 관련 범죄는 본질적으로 공권력의 행사와 헌정질서의 파괴 가능성의 문제이다. 피고인은 국가 최고 권력자였고, 피해자는 추상적 공동체(국민, 헌정질서)인 동시에, 구체적 인권 침해를 겪은 개인들이다. 나나와 같이 전 국민이 심리적 법정에 소환되는 셈이다.

전직 대통령이 ‘나는 유죄가 아니다’를 넘어서 ‘그때의 조치가 정당했다’, ‘헌재·특검·검찰이 정치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순간, 현재는 물론이고 과거 국가폭력의 피해자들 역시 다시 한 번 자신의 경험이 부정되는 감각을 겪게 된다. 여기서 전직 대통령의 이른바 ‘잡범 전략’은 시간 끌기에 그치지 않고, 국가폭력의 기억을 재부인하는 정치적 행위가 된다.

나나 사건과 윤석열 내란 사건을 나란히 놓고 볼 때, 우리는 ‘형사절차의 가장 저급한 방어기법이 최고 권력자의 손에 쥐어졌을 때 그것이 얼마나 큰 정치·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전면 부인이 허용되는 것은 형사 피고인의 권리이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과 그에 따르는 민주주의의 비용은, 더 이상 개별 피고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후자가 더 악랄하다. 나나는 법정에 가기 전에 언론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황당하게, 이 자리까지 오는 게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 같다”

다른 법정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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