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은 새의 고장이다. 가을·겨울에는 기러기와 가창오리 떼가 시베리아에서 날아오고, 봄·가을에는 시베리아 번식지와 호주·뉴질랜드 월동지를 오가는 각종 도요새가 서천 갯벌에 들러 쉬어 간다. 도요새 같은 경우에는 한국의 서해를 기착지로 호주, 뉴질랜드에서 북시베리아까지 거의 1만 3천에서 1만 5천 킬로미터를 날아 다니는데, 한 번 기착할 때까지 거의 먹지도 않고 8천에서 1만 킬로미터를 연속으로 난다고 한다.
올해에도 작년에 이어 서천에 간다. 금강 하구 군산과 서천 경계 정도가 되는 쪽에 서천조류생태관이라는 곳이 있다. 작년 이맘때 한 번 갔고 가을에 갔다. 이제는 탐조 행사가 있으면 따로 문자로 연락을 주신다. 이번에 가을에 도요새 철을 맞아 생태관 선생님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토요일 오전에서 일요일에 걸쳐 서천에서 진행되는 탐조 행사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행사가 오후 2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망원경과 각종 짐을 한가득 싣고 도요새가 서천 갯벌로 날아가는 것처럼 출발하였다.
그런데 차에 망원경과 각종 짐을 싣고 가는 중에 평택을 지나 아산에서 차가 갑자기 퍼졌다. 주행하면서 엔진 돌아가는 게 이상해서 도로에 일단 차를 대고 시동을 다시 걸었는데, 그때부터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당일 나들이 객이 많았는지 내비게이션이 국도 중심으로 길 안내를 했던 거다. 만약 고속도로에서 그랬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험사를 통해 견인차를 불렀다. 처음에는 배터리 문제라고 생각했다. 견인 기사님이 배터리 충전을 했는데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시동 모터가 나간 것 같다고 했다. 주말이라 기아 정비소는 문을 닫았다. 근처에 문을 연 곳에 갔는데 사장님이 점심을 먹고 오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보더니, 시동 모터가 나갔으니 그것만 갈면 될 것 같다며 부품을 가지러 갔다. 한참을 기다렸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시골 편의점 처마에 있는 제비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시골 강아지를 피해 다니느라 진땀을 뺐다.
나도 진땀을 뺐다. 그 와중에 편의점 사장님은 아이들이 귀엽다고 하시면서, 자기 손자들도 쌍둥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홍콩대 교수로 있는 자기 사위와 딸 이야기를 하셨다.

그 와중에도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동 모터를 갈아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에는 엔진이 나갔다. 결국 4시간이 지난 오후 4시경에 엔진 사망선고를 받았다. 정말 시골 국도 한가운데 네 식구가 오도 가도 못할 형국이 되었다. 서울로 돌아갈까 생각했는데 그 와중에 둘째는 도요새와 같은 결연한 자세로 꼭 서천에 가야 한다고 진상을 부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생각을 잘 해야 한다. 카센터 사장님, 견인 업체 사장님 그리고 내가 긴급 회의를 했다. 먼저 차를 서울에 단골 카센터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주변에 렌터카를 알아 보려고 했는데, 다시 반납을 하려면 여기에 와야 한다고 한다. 렌트비도 렌트비 이지만 하루를 버려서 여기까지 반납하러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와중에 견인차 사장님이 그럴 바에는 차라리 쏘카를 지금 가입해서 편도로 예약을 해서 서울에 반납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셨다.
공유 모빌리티가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구나.
그런데 쏘카를 타려면, 쏘카존에 가야 한다.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쏘카존은 1호선 온양온천역에 있다. 다행히 온양온천역에 SUV 한 대가 남아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거기까지 가느냐는 거다. 큰 캐리어에 각종 망원경, 백팩 2개, 가방 두 개, 에코백 3개, 아이들 배낭 두 개, 첫째가 죽어도 가져가야 한다는 킥보드까지…. 카센터 사장님이 근처 택시를 불러주셨다. 1호선 온양온천역에 갔다. 눈앞에 1호선 전철이 서 있었다. 도요새고 뭐고 그냥 저걸 타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우리 집에 갈까? 날도 더운데 집에서 맛있는 거 먹자.”
살살 꼬셨다.
하지만 두 명의 아드님은 절대 안 된다고 버텼다. 그 표정이 아산에서 자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을 앞두고 왜군을 한 명도 돌려보낼 수 없다는 결기(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此讐若除 死則無憾)를 떠올리게 했다. 이 녀석들, 아산에 몇 시간 있었다고 그새 충무공이 다 되었나 보다.
결국, 도요새는 시베리아에서 서천으로 가고, 우리는 쏘카를 타고 서천으로 갔다. 정말 파란만장한 이틀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어떻게 보면 목숨 걸고 서식지로 이동하는 도요새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별일을 다 겪게 된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천을 매년 세 번이나 가게 되었다. 견인차도 불러보고, 견인차에 타보기도 했다. 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없었을 이틀이었다. 아마 그랬으면, 하루가 1년 같고 1년이 하루 같은 삶이었을 것이다. 시골 국도에 차가 퍼지는 일도 없었을 거고, 편의점 처마의 제비도 못 봤을 거다. 그런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택시를 타고 온양온천역에서 1호선을 타고 집으로 왔을 거다. 아니면 온천을 하고 아내와 그 근처에서 하루 쉬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많이 연구하든가, 더 많은 책을 읽었을 거고, 세상에 더 많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삶의 범위도 그만큼 제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표류기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겠지. 도요새가 그렇게 힘들게 사는지도 몰랐을 거고. 참새와 직박구리를 구분 못하고 다 참새라고, 아니면 좀 큰 참새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거다. 목은 이색을 기리는 문헌서원에서 자보는 일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은 이번 주말을 어떻게 기억할까? 일요일 밤늦게 애들을 재우면서 아내와 이야기했다. 서천에서 두 녀석이 뿜어내던 도파민을 떠올려 보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 둘에게도 아이 둘에게도 잊지 못할 이틀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자세히 말해 주지는 않지만, 오늘 학교 가기 전에 자투리 시간에 도감을 찾아 그리다 만 이 그림이 대신 말해 주는 것 같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은 선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